🏚 전세제도의 구조적 문제점

전세는 오직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주거 형태다. 월세도 아니고, 매매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개념. 하지만 이 제도는 부동산 시장의 가격 안정, 세입자의 자산 축적, 집주인의 유동성 확보라는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기묘한 균형 위에 서 있다. 문제는 그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급등락하며, 보증금 반환 사고가 늘어나면서, 전세제도는 점점 더 위험한 구조로 바뀌고 있다. 과거엔 합리적이던 제도가 이제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리스크가 되는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전세제도가 가진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점을 짚고, 앞으로 이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할지를 분석한다.

🏗️ 1. 전세의 구조는 ‘역대급 레버리지’다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을 맡기고, 그 집에 일정 기간 동안 무상으로 거주하는 구조다. 집주인은 이 보증금을 다시 활용해 다른 집을 사거나 대출을 상환한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레버리지’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집주인 입장: 세입자 보증금 = 투자자금 또는 차입금 상환 원천
세입자 입장: 무이자 대출을 집주인에게 제공하는 셈

즉, 전세는 ‘서로의 자금 유동성을 믿는 게임’이며, 부동산 가격이 안정적일 때만 작동 가능한 구조다.

📉 2. 금리 상승은 전세 제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저금리 시절에는 전세가 유리했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다른 투자에 돌릴 수 있었고, 세입자는 월세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고금리 환경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세입자: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이 부담
집주인: 보증금으로 충당하던 대출 이자보다 수익이 낮아짐
은행: 전세보증금 반환 관련 연체 위험 증가

결과적으로, 전세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부채와 이자의 교환 구조로 전락하게 된다.

🧾 3. 전세보증금 반환 사고는 구조적 문제다

전세 사기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지만, 실상은 시스템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신호다.

깡통전세: 집값 하락으로 보증금보다 주택 가격이 낮아지는 상황
이중 계약: 전세보증보험 가입 후 또 다른 임대차 계약 체결
악성 임대인: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으면서 계속 신규 계약 체결

이런 사례들은 법적 허점을 이용하거나, 시장 감시 기능이 부재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 결함이다.
보증보험이나 임대차 신고제는 보완책이지, 근본 해법은 되지 못한다.

📊 4. 임차인은 투자자가 아니다, 그런데 리스크는 진다

전세제도는 임차인을 단순 거주자가 아닌 사실상의 투자자이자 채권자로 만들어버린다.

세입자는 집값 하락 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음
동시에 본인은 집을 소유하지 않고, 재산권도 없음
즉, 위험은 존재하지만 보상은 거의 없는 구조다

이는 글로벌 기준에서 매우 기형적인 계약 형태로 평가되며, 주거 취약계층을 금융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 5. 전세 대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전세의 구조가 지속 불가능하다면, 대체 가능한 주거 모델과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공공임대 확대: 안정적 월세 기반의 중장기 거주 모델 확대
보증금 기반 월세제(반전세) 전환 장려: 고정 수익 + 보증금 분산 구조
전세자금 대출 규제: 무리한 자금 유입 차단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보증금 보호 장치 강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세를 유지할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가 아니라,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 결론: 전세는 한국 주거시장의 ‘위험한 예외’다

전세는 한때 놀라운 유동성과 효율성을 보여준 제도였지만, 지금은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구조적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손해를 전제로 작동하는 제도가 되었고,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에게 리스크를 떠안기는 체계로 굳어졌다.

앞으로 전세를 단순히 ‘전통’이 아닌, 위험 구조로 인식하고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대체안을 준비하는 것이 정책과 사회의 역할이다.
제도는 바뀌어야 살아남는다. 전세도 예외는 아니다.